책을 펼쳐 읽기 전에, 나는 꼭 그 저자의 약력이 적힌 책 표지 옆 장을 먼저 살펴본다. 그 책의 저자가 어떤 나이와 성별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공부를 했고, 어떤 사상을 가진 사람인지 그의 이전 저작들까지 보다보면, 그가 왜 이 책을 쓰고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인가 책의 집필 동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는 왜 자신의 인생에 벌어졌던 수많은 격렬한 사건들 중에서 빠리의 택시운전사 시절을 제목으로 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가?
내가 저자 홍세화씨에 대해 가졌던 질문, 이 책을 처음 펼치면서 했던 질문은 그것이었다.
‘파리’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도시 중 하나이다. 파리가 유럽 문화의 중심지가 된 것은 몇 백 년이 지났고, 다른 유럽 나라들이 수없이 많음에도 세계 사람들은 여전히 파리를 가장 낭만적이고, 가장 깨어있는 자유와 예술, 아름다움의 도시라고 말한다.
나 역시 가장 가고 싶은 세계여행지가 어디냐고 누군가의 질문을 받는다면 파리가 그 중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 것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그가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던 것은 그런 낭만적인 이유가 아니다. 그는 72년 민주수호선언문 사건으로 나름 엘리트 코스였던 서울대에서 제적당한다. 그리고 ‘남민전’이라고 불리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조직사건에 연류 되어 마침 해외지사 파견을 나갔던 파리에서 그대로 망명객으로서 이도저도 갈 수 없는 신세에 놓이게 된다.
망명을 정식으로 신청하지도 않았고, 일종의 정치적 망명자 신세가 되었고, 다시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 그가 택해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는 막노동이나 택시 기사 정도의 일이었다는 것을 납득하는 것은 아주 쉬웠다. 아니 어쩌면 그마저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그나마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하고, 해외 생활에 대해 해외지사를 파견 나갈 정도의 불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갑작스러운 망명자 신세였던 그가 느꼈을 절망감과 막막함이 결코 작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머나 먼 이국땅 프랑스에서 오직 갈수 없는 나라 ‘꼬레’ 라는 말처럼, 그에게 조국은 그리움이었고, 파리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생존의 땅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파리를 여행 다녀온 지인들의 평가는 딱 두 가지 중 하나이다. ‘정말 다시 가고 싶은 꿈의 도시’ 혹은 ‘환상이 현실로 깨지는 더럽고 평범한 도시’ 왜일까? 나는 오히려 파리에 대한 그 극단적인 평가를 듣고 파리에 대한 궁금증이 샘솟고는 했다.
저자 홍세화씨에게 파리는 절망으로 시작되어 꿈과 희망이 된 도시였다. 파리의 택시기사 일을 하며 수많은 파리를 방문하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파리 시민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그들의 정신을 느꼈고, 자유와 아름다움, 옳고 그름을 자신들의 힘으로 판가름 짓겠다는 국가에 대한 애정과 권리가 넘쳐나고, 모든 사람들의 평등함과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높은 시민의식이 살아 숨 쉬는 나라, 하지만 그 낭만적인 배경 속에서도 한국 사람들처럼 소박하고 재미있는 일상이 있는 나라, 그가 말하는 파리는 그야말로 ‘똘레랑스(tolerantia)’, 다름에 대한 인정과 자유의 나라였다.
매우 인상 깊은 영화, 드라마, 책을 잃고 나면, 꼭 한 두 가지 단어가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는 한다. 그것은 마치 개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개그맨의 유행어를 따라하게 되거나, 모 가수에 대한 잡지 인터뷰 기사에 나왔다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 라는 어법에 맞지 않는 듯한 말을 자주 쓰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그레이 아나토미(Grey Anatomy) ’라는 드라마를 보고나면 ‘seriously?“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고 나서는 그럼 어떤 말이 내 기억 속에 남았을까? 그것은 ‘파리‘를 ‘빠리’라고 왠지 불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과, ‘똘레랑스(tolerantia)’ 라는 단어였다. 그것은 이 책의 저자 홍세화씨가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 중 하나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대한민국의 현재에 살고 있는 내가 나의 경험에 비춰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똘레랑스(tolerantia)’ 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과 다른 종교, 종파, 신앙을 가진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관용, 관대함을 의미한다. 아마 이 책의 오랜 인기만큼이나 한국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불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름에 대한 관용’ 그것은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단어는 아닐까? 우리는 얼마 전,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새로운 시대에 대해 자각했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프랑스의 파리 군중들은 이미 몇 세기 이전에 자신들의 힘으로 혁명과 민주주의를 완성해왔고, 현재도 그 때의 정신을 잊지 않고 늘 자신들의 나라, 자신들의 자유로운 도시 파리를 지키기 위해 늘 깨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파리가 가진 이미지가 어떠하든, 그런 정신만큼은 파리를 가장 아름다운 자유의 도시라고 칭송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똘레랑스(tolerantia)’ 소통의 도시, 나는 누구와 소통하고 싶은가? 나는 그의 택시운전 이야기를 들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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