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저자
나무옆의자 출판 2022년 8월
‘우리 기억 속에 편의점은 어떤 곳일까?’
제목 속에 편의점이라는 글자를 보며, 나는 내가 편의점을 어떤 곳이라고 떠올리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마 언제나 가장 편하게,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불편해졌을까? 라는 궁금증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나에게 편의점은 늘 가장 쉽고, 가장 일상 속에 묻혀있듯 가까운 존재였다.
10대 때는 친구들과 함께 거의 매일 편의점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때 내가 받았던 용돈만으로 편의점에 가면 먹고 싶은 것은 웬만하면 다 구할 수 있었고, 수다를 떨 수 있는 테이블이 있어 라면이며 삼각김밥을 잔뜩 시켜놓고 서로 누구 편의점 라면 레시피가 더 맛있게 없다고 하며 학창 시절만의 추억을 잔뜩 쌓곤 했었다.
20대가 되어서는 편의점 라면 테이블이 아닌 계산대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편의점에 갔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되어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는데 가장 쉽게 도전할 수 있는 게 편의점 아르바이트였다. 어린 마음에 포스기 틱틱 찍어주는 아르바이트 대학생이 꽤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아르바이트생이 된 이후부터는 온갖 물품 나르기에 손님을 응대하느라 지친 몸으로 유통기한이 이제 막 지나 폐기해야 할 삼각김밥이며 샌드위치나 바리바리 싸 오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친구들과 간식을 먹으러 가지도, 물품을 정리하고 폐기 예정 삼각김밥을 챙겨오지 않아도 되었지만 여전히 편의점은 내게 많은 추억과 이야기들이 서려 있는 장소처럼 기억된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편의점에 대한 추억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네 캔에 만원’, ‘원 플러스 원’, ‘참깨 라면과 참치김밥에 참이슬, 참참참 레시피’ 같은 편의점에 가야만 있고, 편의점에 가봤다면 누구나 무슨 뜻인지 알 이야기들이 일반 마트보다 조금 비싼 가격에 물건을 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편의점을 찾게 만든다. 멋진 척 수입 맥주를 먹고 싶으면 ‘네 캔에 만원’ 할인 행사를 찾아 편의점에 들러 한 손 가득 맥주를 사 들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간 이 소설 속 경만 아저씨처럼 내 달을 위해 로아커 초콜릿을 사 들고 집에 갈 때 들를 수도 있다. 그러니 아주 어린 아이부터 중년 넘어 어른에 이르기까지 이 편의점 이야기에 혹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편의점이 우리의 고유 전통 세시풍속 같은 것은 아니지만,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24시간 열려있는 곳처럼 누구나 편안하게 집어 읽을 술술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는 편안하다. 40만이 넘는 독자들이 선택했던 베스트셀러는 그런 아주 흔하고, 평범해 보이는 편의점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불편하다는 거지?’ 그 이유는 옴니버스식의 이야기처럼 펼쳐져 따로 주인공이 없는 듯 보이지만 편의점에서 가장 먼저, 꼭 찾아야 하는 아르바이트생, ‘Always 9’의 야간 아르바이트생 독고 때문이었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누구의 인생이든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말이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삶이 그렇다. 낮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현이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누가 봐도 성실하게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이 정말 공무원이 되고 싶은지조차 잘 말할 수 없이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다. 그런가 하면 오전 타임을 담당하는 오 여사님 역시 잘 나가는 대기업에 입사한 아들까지 있는, 인생의 언젠가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는 듯 보였겠지만 속만 썩이는 남편도 오 여사님을 피해 집을 나가 버렸고, 공부 잘하고 대기업에 입사해 오 여사님 인생에 유일한 희망 같아보였던 아들은 회사를 어느 날 그만두고 집에 처박혀 게임이나 하고 있다. 하물며 이 편의점의 사장님이자 주인공 독고를 노숙인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든 ‘간이 큰 분’ 역시 편의점 운영과 관련해 아들과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어쩜 편의점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다 사연이 있을까? 라는 생각에 이 편의점에 무슨 마력 같은 게 있나? 싶다가도 우리 삶이 다 그런 것 아닐까 라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아마 그렇게 편의 점 밖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각자의 비극이 모이는 것 같은 이유는 이곳이 편의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편의점에서 파는 물건이 그렇고, 그 물건을 하나하나 챙기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모습이 삶의 민낯을 드러낼 수밖에 해준다. ‘원 플러스 원’을 사려니 경만이 자신이 왜 이것을 사는지, 이것을 누구를 주기 위해 사는지 자신의 풍족하지 않은 살림이 생각나는 것이고, 염 여사님의 아들도 겨우 네 캔에 만 원짜리 맥주를 사 먹으며 사장 아들이니 계산하지 않으려 하기에 자신의 돈 없는 처지로 인해 독고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충돌하게 되며 모든 사건이 묻히지 않고 드러나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렇듯 누구나 쉽게 살 수 있게 가장 편하게 진열되어 있지만, 편의점이었기에 읽는 독자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그 물건을 사는 사람을 들여다보게 되고, 알아가게 되고, 부딪히게 되는 것 아닐까?
일반 마트에서 산다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그 물건들이 이 소설에서는 모든 사건이 시작되고, 모든 등장인물들의 삶이 드러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렇기에 책을 읽은 다음 편의점에 무심코 들렀을 때 그 물건을 보며 나를 문득 돌이켜보게 되고, 내 삶을 소설 속에 등장한 누군가에 빗대어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아주 사소한 어느 편의점 여 사장님의 선의에서 시작된 이 기적 같은 이야기는 미담으로 시작해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이 코로나 시대의 불안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그렇게 부딪히고, 서로 물어보고, 내 일처럼 조언도 해주며 살다 보면 독고처럼 내 문제를 남이 해결해주고, 치유해주는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나는구나. 라는 감동을 받게 된다. 그리고 점점 이 편의점이 불편한 편의점이 아닌 고마운 기적의 편의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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