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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활동에 추가하면 좋은 책

숲에서 우주를 보다

by 현서엄마 2023.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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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우주를 보다

 

나는 산을 등반하는 것을 즐기는 부류의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라는 글자에는 설레임을 느끼곤 합니다. 아마도 이라는 단어는 내가 힘을 써서 올라가야 하는 매우 멀리, 높이 있는 일종의 목표처럼 느껴지고 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힐링의 장소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내게 있어 숲에 대한 기억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수학여행 때, 어느 지역이었는지는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숲속에 있는 사찰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왁자지껄 수학여행 내내 시끄러웠던 우리는 , 그 사찰을 들어가는 길목에 펼쳐진 긴 삼림욕 숲을 보자마자 모두 조용해졌습니다. 나 역시 시끄러운 자동차소리와 관광지 상인들과 관광객들의 시끄러운 말소리가 갑자기 멈춰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울창한 숲 나무들 사이에 부딪쳐 크게 나는 새소리, 바람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그 삼림욕 숲속 길을 15~20분 정도 걸어가며 우리는 여행기간 내내 처음으로 서로 조용하게 서로의 진심과 요즘 하고 싶은 이야기 같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기도 하고, 숲 나무 사이로 가끔 보이는 청설모의 귀여운 자태에 넋을 읽기도 하면서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에게 이라는 단어를 보면 생각나는 첫 번째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이 가진 이미지, 우리에게 이란 어떤 존재일까? 책을 읽어 내려가며 내내 그런 생각에 빠져보았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심리극 소설 등에서 숲은 양면적인 존재입니다. ‘헨젤과 그레텔이나 해리포터에 나오는 숲은 마녀가 숨어있는 등 어떤 위협이 있는지 모를, 모든 것을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숨기고 있는 두려운 곳입니다. 또 어떤 영화에서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두 주인공을 유일하게 보듬어주고 잠시 세상으로부터 지켜주는 어머니의 품 같은 따스하고 맑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작년 화제작이었던 레버넌트라는 영화에서 주인공들에게 숲은, 때로는 자신들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동물의 가죽이나 자원, 나무 등을 얻을 수 있는 공급원이며, 숲에게 그런 주인공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보듬어야 하고, 원하는 것을 내어주는 자신의 일부처럼 표현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나타나는 은 기존에 내가 보았던 어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의 숲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습니다.

저자는 그저 숲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내가 세운 만다라 규칙은 간단하다. 자주 이곳을 찾아 한 해 동안의 순환을 지켜본다. 소란 피우지 않는다. 아무것도 죽이지 않고 어떤 생물도 옮기지 않고 만다라 안을 파헤치거나 그 위에 엎드리지 않는다. 이따금 사려 깊은 손길은 괜찮겠지만. 방문 일정을 계획하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몇 번은 이곳을 찾을 것이다. 이 책은 그 기간 동안 만다라에서 일어난 일들을 담았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코넬 대학교에서 진화생물학과 생태학을 공부한 생물학과 동물에 대한 전문가입니다. 그런 그가 직접 숲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이 책은 그만의 숲을 바라보는 시선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작은 벌레, 생물들까지도 의미를 부여하는 그의 문체에 나 역시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가며 숲을 상상하게 되는 즐거움은 있었으나, 철학적인 느낌의 만다라나 우주의 원리에 대한 내용에서는 약간 읽어 내려가는 것이 더뎌 지는 것도 사실 이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숲은 작은 지구이자 우주입니다. 미국 테네시 주의 남동부 경사진 숲길에 가파른 지형에 있는 사암 절벽. 저자는 이곳에 둥지를 틀고 지름 1m의 원을 그려 그 작은 숲은 만다라라고 부르고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그저 바라봅니다. 시끄럽게 굴지도 않으며, 아무것도 죽이지 않고, 어떤 생물도 옮기거나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저 저자는 그 만다라를 지켜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모든 규칙을 지키며 작은 만다라에서 벌어지는 일 년 동안 그곳의 나무와 벌레, 새들, 짐승들 등의 온갖 생태를 관찰하고 기록한 저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이 생각한 우주의 원리입니다. '한 톨의 흙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리라' 시인 블레이크가 노래한 말을 인용하면서 말입니다.

그가 관찰한 만다라에서 벌어지는 우주의 규칙은 얼핏 들으면 물리학이나 아주 심오한 과학적 지식이 나올 것 같지만 전혀 그런 것과는 연관성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저자의 문체는 시인이나 수필가의 문체 같은 비유적인 표현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발간에 관련된 기사를 보면 그런 그의 문체를 칭찬하며 자연문학의 새로운 장르라고도 말했다고 하지만, 내가 책을 읽으면서 떠올린 저자 데이비드는 자연을 아주 사랑하는 아저씨혹은 매일 땅을 바라보며 이상한 시를 읊는 사람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봄철 꽃 잔치가 끝났다. 이제 벌꽃과 제라늄 몇 송이만 남아서 4월의 영광을 추억한다. 머리 위에서는 할 일을 다 한 꽃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라고 봄의 숲에 피어나는 꽃들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모습이라든지, "굶주린 여인들이 허공에서 춤을 춘다. 내 팔과 얼굴을 덮치더니 땅에 내려앉아 탐색한다. 내게서 풍기는 포유류 냄새를 맡고 바람을 거슬러 날아왔다.”

라는 식의 문장으로 대체 숲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이런 표현을 하는 걸까? 그가 숲에서 본 것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비유가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표현만 시적일 뿐, 그가 숲을 감성적으로만 바라본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가 만다라에서 관찰한 곤충들의 생존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분명 자연과학과 관련된 책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연가시이야기에서 연가시의 작은 애벌레는 귀뚜라미의 먹이가 되고 귀뚜라미 몸속에 들어간 녀석은 뾰족한 머리를 이용해 소화관 벽을 뚫고 들어가 터를 잡고 성장을 시작합니다. 더 자랄 수 없게 되면 귀뚜라미의 뇌를 조종하는 화학물질을 분비해 귀뚜라미가 웅덩이나 개울을 찾아가 스스로 몸을 던져 익사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물에 닿자마자 연가시는 귀뚜라미의 체벽을 찍고 자유의 몸이 됩니다.

"연가시가 숙주와 맺는 관계는 전적으로 약탈적이다. 희생자는 고통을 겪을 뿐 숨겨진 유익이나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한다. 하지만 기생충 연가시 조차 몸속에 미토콘드리아가 없으면 살 수 없다. 약탈의 원동력은 협력이다.“

아주 작은 미토콘드리아와, 아주 작은 우연 혹은 연가시가 계획한 귀뚜라미를 희생자로 삼아 번식과 생존을 거듭하는 방식,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저자는 어떤 작은 생명도 협력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으며, 때로 자연의 법칙은 잔인하리만큼 약탈적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은 우리가 늘 밟고 다니는 카페트처럼 생각할 뿐, 생명이라고 여기지 않는 경향이 강한 이끼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누구의 눈길도 끌지 않지만 숲 속 생명의 근원인 이끼. 비가 오면 이끼는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가 서서히 내보냅니다. 빗속에 있던 산업 폐기물을 정화하고 자동차 배기가스 같은 공기 중에 함께 떠 밀려온 나쁜 성분들을 여과하고, 물이 부족할 때에는 이끼가 내보내는 물이 나무와 풀들에게 절실한 수분 공급책이 되기도 합니다. 이끼를 먹고 사는 작은 생명체가 있고 그리고 이끼가 내뱉는 작은 미생물과 성분들. 그 작은 생명체를 먹고 자라는 큰 생명체들. 그 모든 것들이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고,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 할지라도 협력을 통해, 때로는 약탈자가 되어 종족을 유지하고 이 지구에서 살아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저자는 우리에게 숲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배우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만다라를 관찰하는 법도 다릅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 드리려고 노력해야 하며, 주의가 분산되지 않도록 집중한다면 우리 주위에 있는 살아 있는 만다라를 재발견함으로써 주위 세상에 대한 친밀감이 더욱 생겨 날것입니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빌딩 숲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빌딩숲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진짜 을 제대로 보고 알지 못한 체 , 빌딩숲 안의 한 명의 어른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빌딩숲이 어떤 형태를 지니고 있고, 어떻게 우리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빌딩숲이 답답하다고 늘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말만 할 뿐, 자신의 생활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체, 매일 같은 환경에서 같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는 합니다.

어쩌면 우리 역시 1의 작은 도시의 만다라에 갇힌 인간이라는 한 종족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저자가 본 숲 속의 1에는 온갖 생명들이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겪고 늘 변화하는 우주 전체를 아울러 볼 수 있는 진리가 숨겨져 있는 곳이라면 이 빌딩 숲 내가 갇혀 살아가는 1에는 과거도, 미래도 꿈꾸지 않고, 그저 쳇바퀴 돌 듯 아무런 의지 없이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생물이 있다는 것 아닐까요 .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이것이 인간이 지구에서 적응해오면서 발견한 우리 종족만의 생존방식이며 원리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당연하다고 느끼는 일들과 시간들이 겹겹이 쌓이고 연결이 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순간의 기적 같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섬세하고 소심하며 긴 호흡을 하게 하는 그런 것들에 관한 이야기

책을 덮고, 표지의 초록빛깔 무성한 숲을 바라보며 저는 책을 읽기 전의 저로 돌아와 생각해보았습니다. 영화, 드라마 ,소설, 수필, 과학서적, 수많은 곳에서 그려지는 숲의 다양한 이미지, 그렇다면 나에게 숲은 무슨 의미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다보니, 제게 숲은 무언가 많이 숨기고 있는 장소라는 생각이 가장 강했습니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 뒤에는 어떤 동물이 튀어나올지 모르고, 발을 스치는 무성한 풀숲 사이로는 어떤 벌레나, 뱀 같은 위험한 동물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하지만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우주 역시 그런 장소가 아닐까 합니다. 무엇인가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는 것 같지만 서풀리 무엇이 나올지 몰라 다가가지 못하는 곳. 하지만 전에 보지 못한 새롭고 신비로운 세상이 숨겨져 있을 것 같다는 느낌. 내가 느낀 숲에 대입시켜 본 우주의 모습은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바라본 만다라같은 작은 원 사이로 본다면 숲은 아주 작은 생물들이 살아가고자 바쁘게 움직이고, 낙엽 한 장도 예쁘고 의미 있는 전체가 될 수 있으며, 이끼 한 뼘. 지나가는 벌레 한 마리도 굉장히 큰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우리가 전체만을 바라보느라, 바쁘게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느라, 스쳐 지나가고 몰랐던 모든 자연의 모습. 그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있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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